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성 라이온즈/사건사고 (문단 편집) === 1984년 [[이만수]] 타격왕 밀어주기 논란 === 1984년 삼성의 [[이만수]]는 홈런과 타점에서 1위를 질주하며 타격 부문을 두고 롯데의 [[홍문종(야구)|홍문종]]과 마지막까지 엎치락 뒤치락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노렸다. 당시 재일동포 출신으로 한국프로야구에 뛰어든 롯데 홍문종은 간발의 차이로 이만수(.340)에 이어 타격 2위(.339)를 기록했다. 단 한 개의 안타면 순위가 뒤바뀔 상황이었지만, 삼성은 정정당당한 승부를 거부했다. 정규시즌 타격부분 1위를 결정짓는 9월 22일부터 23일까지의 롯데 vs 삼성 마지막 2연전. 야구 팬들은 여기서 세기의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였지만, '''9연타석 고의사구라는 진기록이 탄생하였다.'''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신기록. 홍문종은 9월 22일 경기에서 5번의 고의사구를 당했으며, 이에 야유가 쏟아지는 등 분위기가 좋아지지 않자 23일 경기에서는 대놓고 포수가 일어서는 고의사구는 하지 않았지만 볼을 계속해서 밖으로 빼는, 사실상의 고의사구를 4번 했다. 이 작전에 따라 이만수는 덕아웃에서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됐다. 덕분에 홍문종은 삼성의 치밀한 작전 덕택에 10연타석 출루기록을 세웠다. 문제는 2차전에서 이 때문에 '''홍문종이 [[장효조]]의 출루율을 추월할 지경이 되었다는 점'''. 장효조의 출루율도 포기할 수 없었던 [[김영덕]] 감독은 결국 롯데에 져주는 대신 홍문종을 엔트리에서 빼자고 했고, 롯데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7회 수비에서 홍문종은 결국 교체되었고, 이만수와 장효조의 타이틀은 지켜질(?) 수 있었다. [[이만수]]는 이 해 타격 3관왕을 차지했지만 결국 MVP를 수상하지 못하였다. 이만수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밝히고 있다. “1984년만 해도 나는 팀의 막내였다. 감독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선수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지금 같으면 타격3관왕을 못하더라도 정정당당한 승부를 했을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지, 이 때의 수혜자 중 한 명이었던 장효조는 1991년 시즌에서 역시 고의사구로 1리 차이로 타격왕을 빼앗겼다.[* 당시 장효조는 빙그레 이정훈과 타격왕 경쟁 중이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1984년에 자신의 타격왕을 지켜주었던 김영덕 감독이 이제는 빙그레 감독으로서 장효조의 타격왕 경쟁 기회를 빼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것과 거의 똑같은 장면이 25년후 2009년 [[박용택]] - [[홍성흔]]의 타격왕 다툼에서 똑같이 재현된다. '''참고로 세 명의 2위가 전부 롯데소속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